1960년代 살림살이가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
'밥'이란 참으로 귀한 생존 그 자체였다.
오죽했으면 식사는 하셨어요? 아침은 드셨어요? 점심 드셨어요? 라는 말이 인사말이었을까?
제일 큰 소원은 꽁보리밥이라도 배터지게 먹어보는 것이었다.
당시는 도시락을 못 싸가지고 오는 학생들도 꽤나 있었다.
꽁보리밥 도시락이라도 싸가지고 오면 다행이었다
중앙청식당에서도 꽁보리밥 인기
중앙청 구내 후생관(厚生館) 메뉴에 '꽁보리밥'이 등장해 화제
후생관 관계자는 최규하대통령의 혼식을 장려하라는 지시에 따라
메뉴에 '꽁보리밥' 500원을 추가하게 됐다" 꽁보리밥 찾는 사람이
적을까봐 걱정했었는데 의외로 인기메뉴로 등장 했다"고
즐거운 표정.
이 관계자는 "꽁보리밥이 인기를 끄는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시내 음식점에서 이색적으로 꽁보리밥이 유핸된 점도 있지만
어쨌든 꽁보리밥은 여름의 별미가 아니겠느냐"고
꽁보리밥 別味論(별미론)을 피력
동아일보 1980.07.18자 보도내용
『벤또』라는 일본말이
1960년대까지 우리말처럼 사용되었다.
당시 "무조건 일본말 찌꺼기를 몰아내자!"
"조상들이 물려준 우리말을 살려 나가자!"라는 취지로 "한글 전용 특별 심의회 의결안" (1962 5.11)
총칙 1. 우리의 일반 국민생활에 쓰는 글을 모두 한글로 쓴다
이후, 『벤또』를 대체하는 단어로
『도시락』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당시, 『도시락』이란 말로 불리기 시작할 때는
처음에 얼마나 어색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얼마나 자연스럽게 『도시락』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자료 : 동아일보 1962.07.20
1960년대에는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는 학생이 꽤나 많았다.
6.25전쟁 이후라서 고아원에서 학교를 다니는 학생이 한 반에 여러 명씩 있었다.
도시락을 못 싸오는 학생은 점심시간만 되면 슬그머니 교실을 빠져나가 수돗가로 가서 배고품을 물로 채운다.
선생님은 도시락을 서너개씩 싸가지고 오셔서 나누어 주기도 했고, 경제적으로 부유한 학생도 도시락을 두 개 싸가지고 오기도 하고 도시락 나눠 먹기도 했다.